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계속 일어나 촉발하고 솟아올라 다른 의자로 옮겨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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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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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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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2060년까지 살아있다고 가정하면, 그때 나이는 80대 후반이 될 텐데. 대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도저히 답이 없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한해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을 절감하던 그였다.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들은 아이들한테 얼마나 큰 민폐를 끼칠 것인가. 암담했다. “고령화 사회가 본격화된 미래를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과연 나는 살아 있을까. 우리는 지금 완전히 멸망을 향해 가기로 결심한 것 같은데. 우려보다는 체념과 관조에 가까웠어요.” ‘일거리가 떨어져 고민하고 있던 프리랜서 분장사에게 어느 날 한 아이가 찾아온다. 아이는 할머니의 외계인 친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하고, 분장사는 아이와 함께 소동극을 벌인다.’ 소설가 구병모는 처음에는 이 같은 휴먼 드라마 풍의 장편소설을 쓰려고 했다.

Description

콘텐츠 과잉시대에, 굳이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 따뜻한 장편소설을 한 권 더 얹어놔야 할 필요가 있을까. 회의가 들면서 1, 2년 정도 장편소설을 쓰지 않고 묵혀뒀다. 단편소설이라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비로소 노트북을 켰다. 구병모는 근미래인 2060년 초고령사회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비극적 현실을 헤쳐나갈 사랑의 흔적을 찾아가는 단편소설 「니니코라치우푼타」를 지난해 발표했다. 작품은 김유정문학상과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특수 분장사인 ‘나’는 치매로 요양원에 있던 엄마로부터 어릴 적 만났던 외계인 ‘니니코라치유푼타’를 보고 싶다는 말을 전해 듣는다. 엄마의 기억 속에 존재했던 니니코라치우푼타라는 길고도 이상한 이름을 가진 외계인은 정말 실재했던 것일까. 남들 앞에서 모욕을 준 실장의 사과를 받아낸 뒤, 나는 그를 니니코라치우푼타로 분장하여 엄마에게 데려간다. 하지만 엄마의 기억은 이미 사라진 뒤다. 결국 엄마는 떠난 뒤 나는 뜻밖에 엄마의 오래된 사랑을 확인하게 된다. 그 낯선 니니코라치우푼타라는 말에서. “누구도 그 이름의 의미를 알지 못하며 어떤 국가의 글자로도 쓸 수 없으나 태초에 우주 어디에선가 내려와 지금 이 자리에 실존하는 말. 세상 어느 민족에게서도 발견되지 않은 기원전 신화의 끝자락에서 왔을지도 모르는 이름. 낱낱의 발음을 입속으로 찬찬히 굴리는 동안 그것은 일자이자 진리이자 세계정신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60쪽) 작가 구병모가 「니니코라치우푼타」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발표해온 중단편 6편을 묶은 소설집 『있을 법한 모든 것』(문학동네)을 들고 돌아왔다. 소설집에는 미래 세계나 환상 세계는 물론 우리가 현재 발디딘 실재 세계까지 다채로운 모습이 담겨 있다.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온 작가 구병모는 이번 소설집에서 무엇을 갱신하고 혁신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정은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구 작가를 지난달 22일 용산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먼저 니니코라치우푼타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만든 것이다. (어떻게?) 김유정문학상 심사위원들께서 이름을 어떻게 지었느냐고 물어보셨는데, 그냥 좋아하는 글자를 따서 지었다고 말씀을 드렸다. 생각해 보니까, 딱히 정해 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일단 이름은 한 7, 8글자 정도로 길어야 하고, 인간계의 뜻을 담지 않되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게 해야 하며, 발음하기가 너무 어렵지 않게 받침 있는 글자는 한 번 내지 두 번만 쓰자. 본능적인 방법에 의해 지은 이름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나’가 분장실 실장과 다투는 모습도 인상적인데. “일터에서 인간의 존엄은 무시되는 순간을 견디기 어렵다. 그런데 독자님들이 미처 캐치하지 못하신 부문이, 소설 속 두 사람은 40대의 사귀는 사이라는 점이다. 나이 40대의 연인들이 관계를 지속하면서도 서로에게 환멸을 느끼고 감정을 훼손해가며 다투는 일은 흔하다. 이들의 화해가 뜬금없어 보인다면, 공적인 부문에서 일로도 얽혀 있지만 실은 애초에 연인이었기 때문이다. (아, 그랬는가) 너무 티 안나게 쓴 것 같다(웃음).” ―개인적으로 SF적이면서도 현실성을 잃지 않는 밸런스가 돋보였다. “만약 니니코라치우푼타가 실제로 존재한 외계인이라고 확정되면 본격 SF가 될 수도 있겠다.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하면서, 이 외계인이 엄마 머릿속에만 있던 존재인지 진짜 만났던 존재인지 그 경계를 모호하게 지워버린 결과, 현실과 SF의 느낌을 모두 갖게 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비관적인 세계에서도 사랑을 통해 희망을 보게 되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읽어주고 있는 것 같다. 다소 훈훈하게 끝난 것은 맞다. 다만 인물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와 근거가 회한인지, 혹은 사랑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감정인지는 괄호 속에 남겨두려 했다. 공감이나 메시지에 대해 딱히 염두에 두지 않는다. 만약 백 명의 독자가 이 소설을 읽는다면, 백 명 모두가 괄호 안에 각각 다른 말을 기입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반드시 사랑이나 희망일 필요는 없다.” 표제작 「있을 법한 모든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이가 존재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모색하는 이야기다. 로맨스 소설을 의뢰받은 소설가 C는 잠에 들어서 꿈속에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를 보게 되지만 결말을 미쳐보지 못한 채 잠에서 깬다. 그는 이야기를 어디에서 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떠올린 것인지 찾아내고자 있을 법한 모든 결말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무수한 세계인의 꿈속에 동시다발로 출몰한다는 점에서, 그에게 우주 어디에나 편재하는 신의 속성까지 부여하려는 주장마저 횡행한다. 신은 어디에나 있거나 어디에도 없다. 신은 어디에나 있는 동시에 어디에도 없다. 신은 세상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유의 개소리만 아니라면, 신이라는 주어와는 어떻게 갖다 엮어도 어지간하게 말이 되는 것 같아서, 어떤 사람들은 인류의 꿈속에 나타나는 신이 옆머리만 남은 대머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격렬한 저항감 없이 받아들인다.”(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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